0 오늘 점심은 냉라멘에 돈까스 셋트. 태국 한달살이 계획으로 학기가 끝나자마자 태국으로 떠나셨던 시니어 교수님이 보름만에 서둘러 돌아오신 후 점심을 사주셨다. 끄라비에 프라이빗 비치가 있는 좋은 호텔에 머무셨는데도 관광객으로 시끌벅적 정신없는 분위기가 본인과는 잘 맞지 않았다고 하신다. 조용하고 한적한 제주도가 그리웠다고도 하신다. 얼마전 내가 핫플로 유명한 성수동 일대를 처음 거닐어 보다가 내 취향은 역시 광화문 정동쪽이지 성수동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된 그런 느낌과 비슷하려나? 물론 끄라비와 제주도 vs 성수동과 광화문은 체급 차이가 크긴 하지만... 긴 강의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시며 이제 막 3학기째를 마친 나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신다. 특히 comfort zon..
0 우리집에 닌텐도가 들어왔다. 게임 체인저 같은 위풍당당한 형세라 그냥 구매했다보다는 저런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 하다. 아이는 사촌형집에서 잠깐 접했던 닌텐도의 세계를 늘 동경해왔고, 남편은 아들이 유튜브의 조악한 게임티비 채널 컨텐츠를 보느니 좀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게임을 즐기는게 낫다며 장고끝에 닌텐도 구매 결단을 내렸다. 토요일 오전에 개봉한 후 적어도 3시간은 내리 둘이서 거실 소파에 앉아 닌텐도 게임을 즐겼다. 나는 '게임'이 들어가는 모든 것에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래서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남편이 엄마랑도 한번 해야지 않겠냐며 나를 소파에 불러 앉혔다. 내 숨은 의도는 무조건 게임을 빨리 마치는 것. 이기고 싶은 마음도, 전략도 없다. 무조건 이번 턴을 빨리 마쳐서..
0 오늘은 아들의 방학식이 있고, 중복이다. 복날이라고 딱히 보양식을 챙겨먹진 않지만...그러고보니 어젠 집으로 생물장어를 배송시킨 남편이 곧 15분 뒤면 도착한다고 소금구이로 장어를 구어달라 했다. 우리 집 부엌엔 환기팬 외에는 창문이 따로 없다. 탁상용 선풍기 한대 옆에 틀어놓고 한 쪽엔 배추된장국을 펄펄 끓이고 다른 한 쪽엔 후라이팬에 장어 두 마리를 굽기 시작했다. 굵은 소금을 뿌려가며 등이 눌러 붙을까봐 들어 올렸다가 뒤집었다가를 반복하고 가위로 잘라 옆으로 세워가며 골고루 굽는데...이 무더위에 이게 무슨 고문인가 싶게 땀으로 샤워를 했다. 장어구이를 정 먹고싶으면 식당에 가던지, 집에 오자마자 갓 구운 장어만 냅다 받아먹고 있는 남편에게 다시는 장어 배송시키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이 중복 ..
0 반차를 낸 남편과 1시 반경에 만나 남편 직장 근처에서 평양냉면 비냉으로 점심을 먹은 게 어제 데이트의 시작이었다. 십년 산 부부니 데이트란 말을 붙이는 것도 거창하게 들리긴 하지만..;; 살가운 것만 빼고는 같이 밥먹고 영화보는데 여타 연인들이 하는 데이트와 다를게 뭔가 싶다. 매일 학교 주변, 교내식당만 왔다갔다 하다 한낮에 강남 한복판 고층빌딩 속에 들어서니 나도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그럴싸한 점심을 사먹는 대도시 직장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평양 비냉 맛은 딱히 인상깊은 구석은 없었고, 영화 바비도 전작인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을 만든 그레타 거윅 감독에 대한 내 기대치를 뛰어넘진 못하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전형적인 플롯과 직설적인 대사로 채워진 politically correc..
0 어젠 대학원 시절 친하게 지내던 동기를 만났다. 동네 맛집에서 스끼야끼를 먹고 역시 동네 커피로스터리 까페에서 시그니쳐 메뉴라는 밤부라떼를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말차라떼와 에스프레소의 조합인데 달지 않아 식후에 마셔도 부담없이 좋다) 아직 강의를 버거워하는 나와 달리 정년심사를 곧 앞두고 있을만큼 경력이 꽤 쌓인 동기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티칭을 즐기며 여유를 찾은 모습이다. 가족은 제주에 살고있어 제주를 자주 왕래하니, 오름 중 어디가 좋은 지 물어봤다. 지금까지 40여개의 오름을 가봤는데 새별오름과 노꼬메오름이 올랐을 때 보이는 경관이 멋지다고 추천해줬다. 새별은 들어봤어도 노꼬메는 처음 들어보는데 기억해뒀다 다음 제주 여행때 올라봐야겠다. 바다는 곽지해수욕장의 여름 저녁노을 뷰가 무척 예..
0 오늘은 학교에 나가지 않고 동네 스벅으로 나왔다. 사실 점심 약속이 인근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에 있어보는게 일종의 디톡스로 작용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젠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한 하루가 되자라고 글을 맺었지만 정반대로 주변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에 휩싸여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편치 않은 하루였다. 일적으로 가장 긴 시간 가깝게 지내는 반경속에 혹여 별로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주로 크게 부딪힐 일을 만들지 않고 상대방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적당히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그래서 살면서 딱히 껄끄러운 이로 인해 장소까지 불편해지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엔 어떤 결정적 사건이 벌어진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 생각..
0 주말엔 라울 뒤피 그림 전시회와 과천 과학관에 다녀왔다. 아이 키울땐 초등학생만 되어도 얼마나 수월할까, 나이와 육아고충은 비례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초등학생이 되니 왠걸...요샌 남편에게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토로를 전보다 더 자주하게 된다. 주말에 어디 가자는 말에 순순히 따라 나서는 법이 없고, 가자고 설득하는 실랑이를 벌이느라 가기 전부터 이미 지치기 마련이다. 그저 집에서 게임하거나 게임TV 시청하고 뒹굴뒹굴 하는게 최고인데 왜 엄마 아빠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데를 데려가냐고, 엄마 아빠가 하고 싶은거에 왜 내가 맞춰줘야 하냐고 툴툴거림은 계속된다. 꿈이 과학자이고 온갖 과학만화는 섭렵하면서 과학관 나들이를 가장 좋아하던 남자아이는 마치 롱테이크 화면을 찍는 듯, 과학관 내부를 멈추지않고 ..
0 지난 3월 초쯤이었나? 고등학교 동창이 카톡을 보내 안부를 물어왔다. 대학도 같은 곳으로 진학했다가 졸업 후 20여년 사이에 실제 본 건 다섯 번이나 될까? 아주 간간히, 몇 년씩 건너뛰어 카톡 정도만 나누는 그런 동창이다. 그래도 고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연락하는 유일한 동창이라 그 친구에게 티는 안나겠지만 난 나름 각별히 생각하는 친구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때 문집 앙케이트에서 자신의 이상형으로 당당히 '돈 많고 명 짧은 백수'라 적어 나같이 사회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순진한 여고생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형형히 드러낸 바 있고, 경제학 전공으로 졸업과 동시에 바로 공기업 입사를 준비해 지금까지 여의도에 소재한 공기업에 근속하고 있는 안정된 중산층의 범주에 속하는 친구다. 허세인지 허술인지 간혹 구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