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0830

ohsimba 2023. 8. 30. 09:39

0

 

어제 오후, 남편이 캡쳐한 카톡화면 하나를 툭 던졌다. 

 

우리가 예약한 새 차 출고가 (원래는 12월초였는데) 9월 1일로 당겨졌다는 카마스터의 급작스런 통보였다. 

 

우리로서는 기둥 뿌리 하나가 날라갈만한..그런 돈이 들어가는 새 차 인수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다니. 

오랜기간 차 구매 일을 전담해온 남편도 뭔가 마음의 준비가 아직 덜 된듯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최근 차 디자인이 바뀐 탓에 결과적으로 처음 계약시 견적보다 400만원 정도 초과하는 금액이 되었고

그런 목돈이 통장에서 나갈 생각을 하니 우리 사정에, 과연 가당키나 한 금액인지 나는 도통 자신이 없었다. 

 

지금 타고 다니는 차는 남편이 유학 오자마자 미국에서 구입한 소나타였다.

나름 튼튼하고 디자인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데다 남편이 평소 꼼꼼히 잘 관리하며 몰고다닌 터라 

거진 15년쯤 타고 다닌 거 같다. 이제는 잔고장도 잦긴 하지만 우리의 발이 되어주는데 큰 무리가 없는 차다. 

 

그런데 신차 구매의 시동은 작년부터 슬슬 걸리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이 갑자기 차가 필요하다며 우리가 타고다니는 오래된 차를 부모님께 넘기고 새 차를 구입하는게 어떻겠냐고 운을 띄우셨다. 큰아들인 남편은 부모님의 필요에 응답하고자 했고, 자연스레 새 차 구입 프로젝트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남편은 새 차는 지금 타고다니는 것보다는 무조건 급이 높아야 한다는 전제를 세웠다.  

나는 지금 당장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우리보다는 시부모님의 필요에 의해 떠밀려 차를 새로 구입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사야한다면 무엇보다 우리 가계상황에서 지출가능한 예산에 맞춰야 한다는게 우선순위였다. 

 

주로 차를 모는 남편의 눈높이에 무게가 실렸고, 자동차 대리점을 찾아 몇번 시승도 해보면서 차 구매옵션(남편은 썬루프를 꼭 넣고 싶어했다. 백만원만 더 내면 된다며...)을 추가하고 견적을 내 본 결과, 카푸어족에 입성할만한 금액이 나왔고, 남편은 기왕 사는 거 돈 생각해서 기능 낮추지 말고 제대로 지르자는 입장이 확고해보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일단락이 났다가, 12월 초보다 몇개월 앞서, 그것도 출고일 겨우 3일 전쯤에 차가 곧 나온다고 급통보를 받은 상황이 바로 어제였다. 

 

이 계약을 다시 되물리지 않는 한 곧 꽤 큰 돈이 통장에서 빠져나간다는 건 기정 사실이 되었다. 

 

그래서 내 의사를 재확인하고 싶어한 남편에게 나는 우리 사정에 천만원이라도 좀 낮출 순 없을까, 난 그냥 어디 다니기 불편함이 없는 용도로 차를 생각할 뿐, 잡다한 기타 기능이나 차 크기와 브랜드 등은 선호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지금 쓰고 있는 핸드폰도 아이폰7이다. 핸드폰은 전화와 문자, 사진찍는 기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완전히 고장나지 않는 한 구태여 체급을 올릴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이 문제로 남편과 나는 어제 다시 성능과 예산, 두 파로 나뉘어 장시간 카톡과 전화로 소통했고,

갈등이 점점 고조되다가

남편이 급기야, 이제 그럼 당신이 다시 다 처음부터 알아보고 결정해!라는 말이 나오며 절정으로 치닫을 무렵...

나는 감정싸움으로 변질되어 봤자 누구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라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남편에게 왜 내가 다시 이 시점에서 예산문제를 제기하게 됐는지 좀더 풍부한 맥락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그 소통하려는 노력이 남편에게도 통했는지, 다행이 서로 염려하고 서로 중요시하는 부분에 대해서 더 투명하게 들여다보게 됐고, 결정이 어느 한 쪽의 독단적인 의사와 다른 쪽의 배제에 의해서가 아닌, 우리 둘의 공동합의가 중요하다는데 의기투합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이 돈을 차에 쏟아부으면, 남은 기간 어떻게, 어느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야 하는지, 기회비용은 무엇인지 남편과 상호이해를 도모한 뒤...결과적으로 '못먹어도 go!'를 선택하게 됐다.

 

그렇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곧 이번 주말이면 아파트 주차장에 낡은 15년된 소나타를 대신한 눈부신 자태의 신형 SUV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ㄷㄷㄷ 

 

늘 status-quo, 현상유지, 안정추구, 위험회피 성향이 강한 나와

반대로 현상타파, 변화와 도전, 위험감수 성향이 강한 남편이 부부로 한 팀을 이뤄 살고있다. 

그래서 결정하기까지 부딪히는 것도 많지만, 이제 10여년을 같이 살다보니 우선 드는 생각은 어떤 결정이 되었든 부부가 함께 힘을 합쳐 그 책임을 같이 짊어지고 나가자는 마음 쪽이 점점 더 짙어진다.

 

굿바이 소나타, 15년동안 언제나처럼 우리 곁에 함께 해줘서 고마워!

차 뒷좌석 카시트에 쏙 들어가 눈도 못뜨던 신생아가 이제 9살 초등학생이 돼서 안전벨트도 혼자 척척 매고 다녀. 감사패라도 만들어주고 싶을만큼 그동안 고생 많았고 덕분에 여기저기 무탈하게 왔다갔다 하면서 행복한 추억 많이 쌓을 수 있었어.

 

정말 고맙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