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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22

ohsimba 2025. 8. 22. 11:25

1. 문화주간

 

본격적인 9월 개강에 앞서 이번 주는 밀린 일에 대한 걱정은 잠시 꺼두고(회피하고) 

극장에서 영화 2편 감상, 북토크 1회 참석 일정을 감행했다. 

개인적인 문화주간이라 할 수 있다. 

 

본 영화는 각각 마이크 리 감독의 Hard truths, 한국어 제목으로는 '내 말 좀 들어봐'와

월터 살레스 감독의 I'm still here 이었고 둘 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봤다. 

 

마이크 리 감독은 오랜만에 현대극으로 돌아왔다. 

역시 인간의 관계맺기와 소통의 문제에 대해 인물들의 심리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때로는 너무 적나라한 인간군상의 민낯을 드러내기에 마치 거울치료를 받는 것처럼 괴롭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들 각자의 고통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처연해지기도 한다.

 

마이크 리 감독은 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엔딩의 기억을 안겨준 바 있기에 

신작이 나오면 챙겨보는 편이다. 

 

내 뇌리속 가장 기억에 남는 엔딩을 가진 영화는 2편인데, 

하나는 끝모를 하강과 침잠의 느낌으로, 다른 하나는 한없는 상승과 도약의 느낌으로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이 중 전자의 엔딩을 마이크 리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s)'에서

맛봤고, 후자의 엔딩은 예상치않게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 (the kid with a bike)'에서 마주했다.

 

세상 착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안정된 중산층 주인공 부부가 민폐대장 나르시시스트 이웃에게 보여주는 

연민과 호의, 선의에도  임계점이 있다는 것,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영화의 엔딩 무렵 정확히 마침표를 찍어준 그의 연출이 남긴 감각의 기억은 단연코 '서늘함' 그 자체였다.

 

반면 우리 사회의 약자와 그늘진 삶을 비추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마치 욥기의 불가해한 고통처럼 삶을 벼랑끝으로 밀어내는 비극의 연속에서 당연히 일말의

희망에 대한 작은 기대조차 거두던 엔딩 무렵, 소년이 다시 툴툴 털고 일어서서 나아가는 기적을 보여줬다. 

영화 내내 거듭된 소년의 불행을 보며 체념과 무력감이 차올라 넘칠 무렵,

다르덴 형제가 서프라이즈처럼 남겨둔 엔딩 장면을 보며

모든 현실의 모순과 고통을 한순간 소거해버리는 듯한 '도약'의 전율을 느꼈다. 

 

그 두 편 중 한편의 감독 신작이고 마침 방학때 상영중이니 평일 오후 씨네큐브로 보러간 터였다. 

 

'내 말 좀 들어줘'는 켄 로치 감독과 함께 영국의 '키친 싱크 리얼리즘', 즉 노동자, 서민 계층이 직면하고 있는

계급적 모순과 사회적 부조리를 영화의 주요 소재로 다루는 계열의 대표적 감독인 마이크 리 답게

런던 변두리에 사는, 주조연 할 것없이 모조리 흑인인 두 가정 내 관계와 소통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팬지는 소위 말하는 분노조절장애의 최상치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언니와는 정반대로 모난 구석 하나없이 모두에게 친절한 동생만이 그런 언니 곁에서 

'why don't you enjoy your life?', 왜 그러고 힘들게 스스로의 감정을 학대하며 사는 지 

안타까워하는 유일한 사람일 정도이다.

남이면 안 부딪히고 피하고 살면 그만이지만, 그런 사람이 매일 얼굴 맞대고 살아야하는

가족이라면? 팬지의 남편과 아들이 택한 반응은 '침묵, 무시, 회피'다.

즉, 맞서 싸우거나 어떤 식의 해결방법을 찾기보다는

'너는 떠들어라, 나는 귀닫고 입다물고 살겠다'를 택한 쪽으로 보인다.

그치만 묵묵히 누군가의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오래 지내다보면

그들 역시 감정의 금치산자, 산 송장이 되버리는건 시간문제다. 

그래서 그들의 지옥같은 일상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감독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장르인 셈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을 공유했지만 둘째의 성향과 그녀가 일군 가정의 바이브는 천양지차다. 

미용일을 하며 홀로 두 자매를 키운 싱글맘인 샨텔 패밀리는 '내향형이라면 저 집에 같이

못살겠다' 싶을만큼 하이 톤과 하이 텐션, 실없는 농담 주고받기와 허파에 구멍뚫린 것 같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부정과 긍정의 양 극단에 선 두 자매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엄마의 묘지 방문에서 두 자매가 나누는 대화 장면으로부터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물질적, 구조적 현실이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도 주변 누군가로부터 안정된 돌봄과 정서적 지지를

받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어서다. 

 

먹고 사는데 지친 싱글맘 엄마로부터 어릴 때 적절한 정서적 케어를 받지 못했던 언니,

그런 엄마 대신 언니의 헌신적인 케어를 받고 자랄 수 있었던 동생,

그런 언니 팬지의 채울 수 없는 정서적 결핍의 실체를 보게된 후, 

'언니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언니를 사랑해'라고 말하며 다정히 안아주는 샨텔. 

 

그렇지만 마이크 리는 감정의 독소를 바로 해독시켜주지 않는다.

화해와 대통합의 카타르시스가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국면에서도, 심리적 관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닫아놓는 것도 아닌,

(특히 후반부 남편의 행동은, 영화제 Q&A의 moderator였던 베리 젠킨스 감독조차

그 장면이 'it hurts me so much...'였다고 했을만큼 잘잘못은 묻어두고 왠만하면 화이팅을 외치는 편인

나에게도 절망적이었는데 이 역시 'act of love'라는 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아주 미세하지만 내면의 균열과 변화의 여지를 남겨두고, 그 다음은 hand over to the audiences

해석과 전망은 관중에게 맡기는 열린 결말이다.

 

원래는 살레스 감독의 'I'm still here'나 북토크 얘기도 비등하게 쓰려고 했는데 

왠걸, 마이크 리 영화에서 기력을 소진해버렸다. 

 

I'm still here는 생각보다 담담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1970년대초 브라질 군부독재 시절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생사불명이 되버린

국가폭력에 희생된 민주화 투사와 남겨진 가족의 고통이라는 소재는 한국 관객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감정이입하기 쉬운 스토리이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극적인 멜로 드라마같은 요소가 축소되어 있고,

갑자기 들이닥친 군 정보부 세력에 끌려가기 전과 후 가족의 모습을 대비시키면서도

조작되고 은폐된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려는 아내와 아이들의 단단한 인내와 연대,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의 피해자성을 클리쉐처럼 쫓기보다는

과거의 기억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히 응시하는 영화였다.

독재와 민주화, 다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역사적 경로를 공유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영화 상영 내내 객석에 앉아 편히 릴랙스하며 감상하질 못하고

계속 움추리고 힘이 들어간 자세로 봤는데, 무의식중에 몸이 알아서 반응하나보다 싶었다.

 

인생 첫 북토크에 참여하며 든 생각은,

생각했던 것보다 약간 작가분에 대한 팬미팅 느낌이 강하다는 것.

(질의응답시간에 주로 책 구절이나 내용에 대한 감상보다는

작가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강조하거나 찬양에 가까운 팬심을 보여주는 쪽이 더 많았다)

북토크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 중 진행자의 내력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 

진행자가 준비한 질문들은 대다수가 작가가 펴낸 책들만 주루룩 읽어봐도 충분히 짐작가능한

답이 나오는 다소 뻔한 내용들이라 북토크를 통해 작가나 작품에 대해 새롭게 알게되는 점은

별로 없었다는 것. 이 정도다. 

 

시간 초과된다고 질문을 더 받지 않아

싸인회때 못다한 말을 혼자 떠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한 후,

내 차례가 왔을 때, 

이때다 싶어 속사포처럼 '책에서 무엇이 좋았고 + 책을 읽고난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

위에 쓴 최근에 본 좋은 영화 두 편 추천 + 내가 작가에게 추천하고 싶어서 구입한 책선물'까지

준비한 것들을 모조리 마칠 수 있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 말에 일일히 반응해주고, 내가 말한 맥락과 딱맞는 인사말까지 적어준

그를 보니 역시 북토크까지 열수 있는 작가는 아무나 못하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에게 pay attention 할 수 있는 능력이 기본 중 기본인데 

나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상대방을 경청하기 보다는 과연 내가 하고싶은 말을

그럴듯하게 잘 할 수 있을까에 사로잡혀서 부정맥이 심하게 요동치느라 지금 현재에 집중을 못하는..)

그래서 진짜보다는 겉도는 말과 생각에 그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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